한국 경제, ‘저성장 터널’에서 길을 잃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1인당 GDP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1997) 이후 성장 궤적은 완만한 하강 곡선입니다. 1990년대 초 8 %에 육박했던 성장률은 2000년대 4 %, 2010년대 2 %로 추락했고, 2024년 잠정치 1.3 %는 저성장 고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심리입니다. 고속 성장을 ‘정상’으로 기억하는 사회에서 2 % 성장은 실패로 여겨지고, 불안은 투자·소비·출산을 모두 압박합니다.
1. 저성장의 뿌리 — 잘못 이식된 ‘일본식 모델’
1) 간접금융에 갇힌 자본
1930~40년대 일본 전시 총동원 체제에서 비롯된 ‘은행 대출 → 중후장대 제조업 → 정부 통제’ 사다리를 한국은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2025년 현재 미국 기업 자금조달의 70 %는 자본시장에 의존하지만, 한국은 25 %에 그칩니다.
2) 종신고용·연공서열의 그림자
장수 사회로 진입한 뒤 종신고용은 기업 재무를 짓누릅니다. 생산성보다 연령이 임금을 결정하니 R&D·신사업 투자 여력은 축소되고 역피라미드 고용 구조가 고착됩니다.
3) ‘재벌 프리미엄’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재벌은 초기 자본 축적기엔 필요했지만 순환출자·편법 승계가 기업가치를 갉아먹으며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를 ‘싸지만 위험한 시장’으로 판단합니다.
2. 성장률 집착이 낳은 ‘부채·부동산 굴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가계대출을 풀어 소비를 떠밀었습니다. 결과는 2015~2021년 주택가격 56 % 급등, 가계부채 800조 → 1,900조 원 폭증. 금리 인상기에 취약차주 연체율이 5 %를 넘어서는 등 소비 여력은 바닥났습니다.
3. 정치 사이클과 구조개혁의 ‘불발탄’ 25년
정부 | 구호 | 성과 | 한계 |
---|---|---|---|
김대중 | 벤처·IT | 초고속 인터넷 | 연금 개혁 미완 |
노무현 | 동반성장 | FTA 확대 | 노동·부동산 난맥 |
이명박 | 747 | 녹색성장 | 토건·금융위기 후유증 |
박근혜 | 경제민주화 | 사회보험 확대 | 가계부채 폭증 |
문재인 | 소득주도 | 최저임금·52시간제 | 전세대출 200조↑ |
윤석열 | 실용주의 | 법인세 인하 | 장기 로드맵 부재 |
5년 단임 구조는 결국 “다음 정권에 폭탄 미루기”를 부추겼습니다.
4. 한국 경제의 세 가지 ‘막힌 혈관’
- 노동시장 병목 — 연공서열 임금, 기업별 노조, 청년 사다리 실종
- 산업·금융 기형 결합 — 대기업 내부거래 30 %, 은행 이자수익 의존 85 %
- 사회안전망 빈틈 — 공공병상 10 %, 국공립대 20 %, 노인빈곤율 34 %
4-1) ‘좀비 기업’이 삼키는 생산성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비금융 상장사의 17 %를 차지합니다. 자본과 인력이 미래산업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4-2) 투자 효율과 ‘30 % 함정’
한국은 GDP의 30 %를 투자해 겨우 2 % 성장합니다. 투자 방향이 혁신보다 이해관계를 좇기 때문입니다.
4-3) 인구절벽과 기술변화
합계출산율 0.68, 고령인구 20 %. 동시에 AI·탈탄소 전환이 노동집약 모델의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5. 급한 불 — 가계부채·부동산 버블 ‘연착륙’
DSR 40 %
단일화- 전세보증 보험료 위험기반 차등
- 공공·사회주택 10년 100만 호
- 자영업 채무조정 상시화 (부채비율 200 % 초과 시 장기 상환·이자 감면)
6. 중기 과제 — 재벌·사법·금융 ‘삼각 개혁’
상법 개정(실질 지배 20 % 초과 시 동일인 규제), 집단소송·징벌배상(손해액 5배 + 경영진 형사처벌), 은행 의결권 규제, 모험자본 생태계 조성 등이 핵심입니다.
7. 장기 과제 — 성숙한 사회를 위한 네 가지 기준
- 조세부담률 25 → 35 % (보유세·자본이득세 정상화)
- 공공병상 10 → 30 % (지방의료원 확충)
- 국공립대 20 → 50 % (지방 거점 국립대 정원 2배)
- ‘기본소득’ 대신 ‘기본 서비스’ (교통·통신·주거·에너지)
8. ‘30D’ 전략 — De-leveraging · De-carbonizing · Digitalizing
① 부채 감속 ② 탈탄소 전환 ③ 전면 디지털화를 동시 추진해 체질을 바꾼다는 구상입니다.
9. 국민·정치·기업이 맺는 ‘새 계약’
- 국민 — 성장률·집값 집착을 내려놓고 증세 수용 ⇨ 고용·교육·의료 기본권 확대
- 정치 — Unpopular choice 감수 ⇨ 중장기 비전 실현·신뢰 회복
- 기업 — 투명경영·친환경 투자 ⇨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10. 마무리 — ‘오늘의 불편함’이 ‘내일의 안전판’이다
저성장은 피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성숙과 안정을 기준으로 보면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페인트칠이 아닌 기초 보강, 인기 아닌 지속가능성, 속도 아닌 균형. 불편하고 더딘 길이지만, 그 길 끝에서 한국 경제는 다시 다음 세대가 뛰어놀 운동장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