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1. 2025년의 참혹한 현황
국토교통부가 특별법에 따라 공식 집계한 피해자만 2만 5,578명, 피해 금액은 2조 5,000억 원(2024-12-20 기준)에 달한다. 실제 숫자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의 74%가 40세 미만 청년, 전세보증금 3억 원 이하가 97%다. 조직적 사기가 서민·청년이 몰린 빌라촌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2.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 100년의 흔적
신문에 ‘전세사기’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3년이었다. 이후 1970~80년대 ‘삼각지 아파트’ 사건 등 대규모 피해가 반복됐다. 범죄 구조는 한결같다. 집주인이 소유권을 속이거나 의도적으로 경매에 넘겨 전세금을 편취한다. 제도가 미비한 탓에 수법만 지능화·대형화되었을 뿐이다.
3. 전세사기 메커니즘 ― 6단계 다중 공모
- 계획: 건축주·감정평가사·브로커가 허위 시세를 만들고 바지사장(새 소유주)을 섭외한다.
- 물색: ‘실장’이 SNS·부동산 앱을 통해 피해자를 유입한다.
- 계약: 가계약 후 본계약 단계에서 소유주가 바뀌고, 받은 전세금은 즉시 분배된다.
- 도피: 명의 변경 및 자금 은닉, 집주인 정보는 비공개로 남는다.
- 지연: “곧 돌려주겠다”는 거짓 약속으로 시간을 끈다.
- 소송: 피해자가 고소해도 ‘집값 > 보증금’ 논리로 실형은 솜방망이에 그친다.
결국 “조심했어야 한다”는 말은 공허하다. 개인이 아무리 꼼꼼해도 제도 틈을 악용한 조직 범죄를 완벽히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피해자의 얼굴
- 30대 지방 근무자: 낯선 도시에서 계약 후 서류가 ‘종이쪼가리’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 신혼부부: 예식을 미루고 대책위 활동에 올인, “일상이 멈췄다.”
- 70대 은퇴 부부: 자녀 명의 대출로 얻은 집, “아이 이름에 빚을 졌다”며 자책.
- 20대 사회 초년생: 특약까지 넣었지만 허위 자료에 당해, 억울함 탓에 공론화 전면에 나섰다.
심리 상담 5회가 끝나면 “자살예방 핫라인으로 전화하라”는 안내만 남는 현실이 그들의 고통을 더한다.
5. 왜 반복되나? ― 핵심 원인
① 정보 비대칭
빌라는 시세·거래 데이터가 부족하다. 사기범 일당은 자전거래로 가격을 띄워 ‘깡통전세’를 만든다.
② 미들맨의 도덕적 해이
피해자 5명 가운데 1명꼴로 공인중개사가 가담한다. 감정평가사·분양대행사·은행 직원까지 연결돼 ‘공인’ 신뢰를 역이용한다.
③ 제도 허점
전입 다음 날에야 대항력이 생기고, 임대인이 바뀌어도 통지 의무가 없다. 피해자가 보증금을 지키려면 “알 수 없는 사람의 매매계약서를 구해 오라”는 이율배반적 절차도 여전하다.
6. 실효성 있는 정책 제언
- 빌라 시세 공개 플랫폼 구축: 빅데이터·AVM으로 연립·다세대 실거래가를 표준화해 투명성을 확보한다.
- 집주인 금융정보 열람권: 계약 전 세입자‧중개사가 집주인 신용점수와 연체 이력을 열람하도록 의무화한다.
- 중개사·감정평가사 징벌적 과태료: 허위 설명이나 업(UP)감정 적발 시 수수료의 수십 배를 부과하고 면허를 제한한다.
- 경매·대출 사전통지 의무화: 임대인이 담보대출을 받거나 소유권을 변경할 경우 세입자‧보증기관에 자동 알림한다.
- 전세 → ‘반(半)전세’ 전환 유도: 전세보증금 상한을 시세 50%로 낮추고, 나머지는 월세로 전환해 ‘보증금 > 집값’ 구조를 차단한다.
7. 연대가 만든 희망
무너진 일상 속에서 피해자들은 오픈채팅방과 대책위를 통해 서로를 발견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민달팽이유니온 등 시민단체가 손을 맞잡으면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연대는 위로를 넘어 제도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적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8. 마지막 한 마디
전세사기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국가가 방치한 구조적 범죄다.
정보 공개, 공정한 중개, 금융 투명성,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를 낙오시키지 않는 사회적 연대가 동시에 작동해야만 이 괴물에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함께 목소리를 내는 순간, 괴물은 힘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