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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참나무의 기적과 한국 산림정책: 불에 강한 숲, 함께 가꿔야 할 미래

2025지속가능네트워크 2025. 3. 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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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포르투갈에서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무려 50만 헥타르의 숲이 불탔고, 100명이 넘는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고온과 강풍이 산불을 키웠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유칼립투스였습니다. 불에 쉽게 타며, 불이 나야 씨앗이 퍼지는 유칼립투스는 거대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타버린 그 속에서, ‘페라리아 데 상주앙(Ferraria de São João)’이라는 외딴 마을만은 기적처럼 살아남았습니다. 이 마을을 지킨 건 200년 된 굴참나무 숲이었습니다.

굴참나무, 생명을 지킨 방화림

굴참나무(Quercus suber)는 참나무과 상록활엽수로, 두꺼운 코르크 껍질과 뛰어난 수분 보유력 덕분에 불에 매우 강한 나무입니다. 불길 속에서도 스스로 살아남고, 주변 생태계를 보호합니다.

굴참나무의 주요 특성

  • 내화성: 두꺼운 코르크 껍질은 고열을 견디며 내부조직을 보호
  • 수분 저장: 뿌리 깊이 자라며 토양의 수분을 오래 지킴
  • 생물 다양성: 곤충, 포유류, 조류의 서식처가 되며 건강한 생태계 유지
  • 긴 수령: 200~300년 이상 살아 마을을 오랜 시간 보호

마을 사람들은 이 기적을 계기로, 마을 주변 100m를 ‘마을 보호 구역(VPZ)’으로 정하고 참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각자의 땅을 공유지로 전환해 공동으로 숲을 가꾸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함께 나무를 심었습니다. 숲을 재건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태적 전환을 이끈 것입니다.

한국은 왜 소나무에 집중했는가?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나무를 심고 있을까요? 최근 10년간 산림청은 소나무 식재 비중을 1.5배 이상 증가시켰습니다. 특히 산불 발생 이후에도 같은 자리에 다시 소나무를 심는 ‘재조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산림청이 소나무에 집중한 이유

  1. 문화적 선호와 전통 이미지
    소나무는 '절개'와 '선비정신'을 상징하며,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입니다. 국토 상징으로 여겨지며 전통 건축, 서화, 문학에서 자주 등장했습니다.
  2. 경제성과 정책 편의성
    • 소나무는 비교적 성장 속도가 빠르고, 목재 자원으로 활용 가능
    • 조림, 관리가 단순하여 행정 처리에 유리
    • 동일 수종 대량 식재는 조림 예산 집행과 탄소 흡수량 계산이 쉬움
  3. 산림청-기업 간 산업 연계 구조
    소나무 묘목 생산, 우드 펠릿, 바이오매스 발전, 탄소배출권 발급 등의 사업이 연계돼 있으며, 여기에 기업과 산림청이 함께 관여한 경우도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단일 수종 중심의 경제성 논리가 생태 안전성을 후순위로 밀어낸 셈입니다.

문제점: 단일림의 취약성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기후위기 시대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 산불에 매우 취약: 침엽수는 수분이 적고 수지(樹脂) 함량이 높아 불쏘시개 역할을 함
  • 생태계 단순화: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기 어렵고, 산림 병충해 발생 위험 증가
  • 토양 유실과 산사태 위험: 뿌리가 깊지 않고 낙엽이 적어 토양 보전 기능이 약함

굴참나무, 한국에도 심을 수 있을까?

굴참나무는 지중해성 기후에 잘 자라지만, 한국 남부 해안 지역, 특히 전남, 경남,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적응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시험 식재가 이뤄진 사례가 있으며, 내화성이 뛰어나 방화림, 도시 외곽 숲 조성, 국립공원 인접 완충지대에 적합합니다.

한국산 참나무류의 활용 가능성

한국에도 굴참나무와 유사한 내화성과 생태적 가치를 지닌 참나무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 상수리나무(Quercus acutissima)
  • 신갈나무(Quercus mongolica)
  • 졸참나무(Quercus serrata)
  • 갈참나무(Quercus aliena)

이들은 모두 넓은 잎, 깊은 뿌리, 풍부한 수분 저장력과 방화 기능을 지녀 한국형 '굴참나무 숲'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대안입니다.

결론: 지금 우리가 심어야 할 나무

굴참나무의 기적은 단지 한 마을의 생존기가 아닙니다. 기후위기와 생태재난 속에서 우리가 어떤 숲을 만들어야 할지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한국도 더 이상 소나무 단일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참나무류와 활엽수 중심의 건강한 혼효림 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마을이 스스로 공유지를 만들고, 주민이 직접 나무를 심으며 방화림을 만든 페라리아 데 상주앙의 사례처럼, 한국도 지역 공동체 중심의 숲살림 전략, 시민 참여형 나무 심기 운동, 생태적 전환 중심의 산림 정책이 필요합니다.

굴참나무는 말합니다.
“무엇을 심고, 누구와 함께 숲을 가꿀 것인가?”
그 답을 지금,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할 때입니다.

굴참나무의 기적
굴참나무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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