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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은 위치, 임진왜란기 이순신 통제사의 ‘본영–통제영–전진기지’ 위치 변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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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은 위치, 임진왜란기 이순신 통제사의 ‘본영–통제영–전진기지’ 위치 변화

2025지속가능네트워크 2025. 8. 23.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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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
전라좌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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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은 어디였나?
임진왜란기 이순신 통제사의 ‘본영–통제영–전진기지’ 위치 변화

혼동되는 여수·한산도·고금도의 관계를 행정 본영, 삼도 총지휘부, 전진기지로 나눠 한눈에 정리

#전라좌수영#여수#진남관 #한산도#고금도(묘당도)#통제영
빠른 이동
핵심 요약
  • 좌수영(행정 본영): 공식 소재지는 일관되게 여수.
  • 통제영(삼도 총지휘부): 전황에 따라 한산도 → 고금도(묘당도) → 통영으로 이동·정착.
  • 전진기지: 작전 필요에 맞춘 임시 거점(고하도, 벽파진 등)으로 본영과 혼동 주의.

1) 좌수영의 탄생과 여수 입지

조선은 왜구 대응을 위해 각 도에 좌·우수영 체제를 두었습니다. 전라도의 좌수영은 1479년(성종 10) 순천 오동포(오늘의 여수)에 설치되어 동남해 방어의 행정·군사 거점이 됩니다. 1485~1491년 좌수영성 축성과 정비가 이어지며 동헌·객사·군기고 등 관아가 계획적으로 배치됩니다.

여수만은 반폐쇄적 내해 지형으로, 포구·성곽·군영 배치가 방어에 유리했습니다. 현재도 여수시 군자동·동문동·중앙동 일대에 성지와 관련 유구가 남아 있어 ‘본영의 도시’ 성격을 보여줍니다.

 전라좌수영 위치
전라좌수영 위치

2) 진남관: 좌수영의 상징

진남관은 좌수영의 객사이자 상징 건물입니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옛 진해루 터에 1599년 통제사 겸 좌수사 이시언이 대형 단층 목조건물을 세웠고, 이후 중건·보수를 거쳐 현재의 위용을 갖췄습니다. 여수 본영의 행정·의례 중심으로서 좌수영의 위상을 상징합니다.

3) 임진왜란 전반기: 여수 본영 → 한산도 ‘통제영’

이순신은 1591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여수 본영을 정비했고, 1592년 전란 발발 후 옥포·사천·당포·한산으로 이어지는 승전을 전개합니다. 전황 확대에 따라 조정은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신설하여 전라좌수사가 겸임하도록 했고, 최초의 통제영은 한산도에 설치됩니다.

정리: 좌수영=여수의 행정 본영, 통제영=삼도 총지휘부(전진 사령부). 두 체계가 병행 운용됩니다.

4) 정유재란기: 칠천량 이후의 재건과 고금도(묘당도) 통제영

1597년 칠천량 패전으로 한산도 통제영이 타격을 입자, 백의종군 뒤 복귀한 이순신은 명량 승리로 전열을 수습합니다. 이어 1598년 2월 전시 통제영을 완도 고금도(묘당도)에 설치하고, 여기에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이 합류해 조·명 연합함대를 구성합니다. 이 거점에서 노량해전(1598.11) 준비와 종결전 지휘가 이어집니다.

이 시기에도 좌수영의 행정 본영은 여수에 유지되며, 통제영은 전황에 맞춰 이동·운용되었습니다.

5) 전란 이후: 통제영의 통영 정착, 좌수영의 존속

전후 통제영은 잠시 유동했지만, 1603~1604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오늘의 통영(옛 두룡포)로 옮겨 삼도수군통제영을 정착시킵니다. 이듬해 세워진 세병관은 통제영 도시의 상징이 되었고, 지명 ‘통영’의 연원이 되었습니다. 반면 전라좌수영 본영은 여수에서 근대 군제 개편으로 1907년 폐영될 때까지 기능을 이어갑니다.

6) 왜 위치가 헷갈릴까? 핵심 포인트 3

  1. 좌수영(본영): 전라도 동부 연안을 관할하는 제도상 주진. 행정 소재는 일관되게 여수.
  2. 통제영(삼도 총사령부): 임진왜란 중 신설된 상위 지휘부. 한산도 → 고금도 → 통영으로 기능 이동.
  3. 전진기지: 작전상 임시 거점(고하도, 벽파진, 절이도 등). 전시 특성상 기지=본영으로 오인되기 쉬움.

7) 타임라인 요약표

1479 전라좌수영, 순천 오동포(여수)에 설치—여수 시대 개막
1485~1491 좌수영성 축성·정비(관아·군영 배치)
1591 이순신, 전라좌수사 부임—여수 본영 정비
1593 삼도수군통제사 신설·겸임, 한산도 최초 통제영 설치
1597~1598 칠천량 패전·명량 승리, 1598.2 고금도(묘당도) 통제영 설치 → 노량해전 준비
1603~1605 전후 통제영, 통영(두룡포)로 정착 · 세병관 건립
17~18C 여수 진남관 중건·보수—현재의 골격 확립
1907 군제 개편으로 수영 체제 폐지(좌수영 폐영)

8) 답사 팁: 현장에서 읽는 공간 논리

여수 진남관–좌수영성지

  • 관아·객사·성지 유구로 ‘본영의 도시’ 체감
  • 도심 평지와 여수만 내해의 방어적 배치 확인

한산도 제승당

  • 최초 통제영의 현장, 학익진 승전 배경 지형
  • 포구–성곽 잔존 지형으로 작전 동선 상상

완도 고금도(묘당도)

  • 정유재란 시기 최종 전시 통제영
  • 조·명 연합 함대 편성, 노량해전 준비무대

통영 통제영–세병관

  • 전후 상설화된 통제영의 행정·의례 중심
  • ‘통영’ 지명의 유래 체험

맺음말

전라좌수영의 행정 본영은 여수였으며, 임진·정유 양란 속에서 삼도수군 통제영전진기지가 전황에 맞춰 한산도–고금도–통영으로 유동했습니다. 이 구조를 겹쳐 보면, 이순신의 전략은 ‘성지 방어’에 머물지 않고 지휘 거점의 유연한 이동을 통해 해상 주도권을 회복·유지한 네트워크형 방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요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전라좌수영, 좌수영성지, 진남관 항목
  • 국가유산청(문화재청): 한산도 제승당, 통영 통제영·세병관, 여수 진남관
  • 여수시·통영시 문화유산 안내: 성지·관아 유구 및 복원 정보
  • 임진왜란 관련 사료집·지리지(해동지도 등) 내 영성도·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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