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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공전과 사전 (3)
살림과 일상

고조선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농경 문화고조선은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처음 시작한 나라로 기록됩니다. 당시 농민들은 돌칼을 이용해 곡식을 수확하며 살아갔고, 이러한 농경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농민들의 농경 유전자는 마늘과 쑥을 먹으며 버틴 단군 신화처럼 질긴 생명력을 자랑합니다.왕토사상의 탄생: 모든 땅은 왕의 것고대 왕토사상(王土思想)은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왕의 신하 아닌 사람도 없다"는 시경(詩經)의 구절로 대표됩니다. 이 사상은 삼국시대 식읍(食邑)과 녹읍(祿邑) 제도로 구체화되었고, 땅의 소유와 세금을 거두는 권리(수조권)를 통해 왕의 지배 체제가 강화되었습니다. 특히 신라의 불교적 이상사회에서도 왕토사상은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왕의 땅이 모두의 ..

고려시대의 토지 제도는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도 독특한 구조와 특징을 가진 체계로 평가받습니다. 공전(公田)과 사전(私田)의 개념은 고려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시대의 토지개념을 중심으로 전근대 동아시아의 중국 및 일본의 토지관과 비교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해보겠습니다.1. 고려시대 토지 제도의 배경고려시대는 공전과 사전이 병존하는 구조를 통해 공공성과 사유재산 개념을 융합한 독특한 토지 체계를 구축했습니다.공전: 국가 소유 토지로, 농민들에게 경작권을 부여하며 세금을 통해 공공 이익을 실현하였습니다. 이는 국왕 중심의 권력 구조와 긴밀히 연계되었습니다.사전: 귀족, 관료, 사찰 등이 소유한 사유지로, 점차 확대되면서 경제적 불..

한국 역사의 전환점 중 하나로 꼽히는 고려에서 조선 초기에 걸친 토지 제도는 공전(公田)과 사전(私田)의 개념과 운영 방식에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왕토사상(王土思想)을 중심으로 공전과 사전의 개념 변화와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봅니다. 공전과 사전: 개념과 변화1. 공전과 사전의 초기 구조고려 초기에는 토지가 직역(직업)과 연계되어 공에서 사로, 사에서 공으로 순환되는 체계였습니다.직역자는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아 사용하는 대신, 직역 기간이 끝나면 토지를 반환해야 했습니다.2. 고려 후기: 균열의 시작12세기 이후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 문제가 발생하며 공과 사의 연계성이 약화되었습니다.토지의 사유화가 확대되면서 공전과 사전의 개념이 점차 분리되었습니다.3. 조선 초: 과전법의 도입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