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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 교수의 반성과 성찰의 산물입니다. 그는 진보신당 강령 작업에 참여한 경험과 지난 수십 년간 진보 정치를 경험하며, 진보 정치가 왜 실패했는지 고민해왔습니다. 김 교수는 진보 정치가 공공선을 위한 헌신적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권력 투쟁과 적대적 대립에 함몰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왜 영성이 중요한가?
김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가 종교적 영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나와 전체, 나와 역사가 하나’라는 믿음, 즉 영성은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같은 대규모 항쟁의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한국 민중운동은 서구의 세속주의적 진보와 달리, 종교적 신앙이 혁명적 운동의 토양이 되는 독특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성의 상실은 곧 민주주의와 진보 정치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김 교수는 주장합니다.
영성, 이성을 넘어서는 믿음
김 교수는 이성과 영성을 구분하며, 영성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 지성은 개별적 사태를 이해하는 능력,
- 이성은 이를 종합하여 전체를 사유하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성은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이성은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기 쉬우며, 악의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체를 하나로 이해하고, 그 안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이성으로는 규명할 수 없으며, 영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고통과 사랑: 영성의 본질
김 교수는 고통을 영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매개로 삼습니다.
“나의 한계는 고통의 한계이며, 내가 고통을 느끼는 육체가 나의 존재의 한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순간, 존재의 경계는 확장됩니다. 세계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즉 영성은 타인과 세계를 향한 응답이며, 이 응답이 곧 사랑입니다. 영성은 사랑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며, 전체와 자신이 하나임을 깨닫게 합니다.
전태일과 서준식: 영성적 실천의 사례
김 교수는 한국 진보운동의 역사에서 전태일과 서준식을 영성적 실천의 상징으로 제시합니다.
전태일: 사랑으로 타인의 고통을 알리다
1970년,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명을 불사르는 희생을 통해 세상에 그들의 고통을 알렸습니다. 그의 행동은 “타인이 나의 또 다른 나”라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며, 1970년대 진보운동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서준식: 유물론적 영성의 발견
서준식은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17년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기독교 성서를 읽으며 예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사랑 없이 증오에 몰입하는 속류 혁명가의 대척점”으로 보았고, 약자를 위한 헌신적 삶의 모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였지만, 그의 삶은 영성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진보 운동의 영성 상실
김 교수는 1980년대 이후의 진보 운동이 목적이 선하다는 확신 속에서 수단의 정당성을 무차별적으로 정당화하며 영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합니다. “전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치우침으로 인해 우리는 더 높은 하나를 이루지 못한 채 적대적으로 분열”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진보 정치는 권력투쟁에 매몰되었고, 영성이 사라진 진보는 사랑 없이 증오에 기댄 속류 혁명가로 변질되었습니다.
새로운 영성을 향하여
김 교수는 “역사에 대한 믿음, 전체에 대한 믿음, 전체와 내가 하나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영성의 도래를 열망합니다. 그는 이 믿음이 진보 정치에 사랑과 헌신을 다시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영성은 공허한 이상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언제나 이성과 결합해 실천적 의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비판과 성찰
김 교수의 진단은 많은 통찰을 제공하지만, 몇 가지 비판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 단순화된 진보 운동 평가
김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진보 운동이 영성을 상실했다고 평가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비판일 수 있습니다. 80년대의 운동은 광주 5·18이라는 비극을 딛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려는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증오와 적대감으로 치부하기에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간과한 면이 있습니다. - 현실 정치에 대한 대안 부족
김 교수는 새로운 영성을 열망하며 진보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지만, 현실 정치의 구체적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비판이 현재 진보 운동에 대한 지나친 염세주의나 이상주의로 읽힐 수 있는 부분입니다. - 영성의 구체적 구현 방안 필요
김 교수는 새로운 영성의 도래를 희망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제안은 부족합니다. 현실 정치와 사회운동 속에서 영성을 어떻게 다시 중심에 둘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보완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영성
『영성 없는 진보』는 진보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철학적으로 성찰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김 교수의 메시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짚고, 진보가 본래의 사랑과 헌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세계의 고통을 사랑으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새로운 영성은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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